이제 더 이상 해드릴 것이 없으니 집 근처 병원으로 가세요
이제 더 이상 해드릴 것이 없으니 집 근처 병원으로 가세요
환자나 보호자들이 가장 듣기 두려워하는 말이 무엇일까?
아마도 담당의사가 하는 이 말이 아닐까 싶다.
“이제 더 이상 해드릴 것이 없으니 집 근처 병원으로 가세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으니 병원에서 나가고 집에 가서 맛있는 것이나 잡수시면서 죽을 준비 하라는 말. 참 무서운 말이다. 암이라는 큰 병을 진단받고 열심히 투병생활 하면서 의사선생님들이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그 결과 듣게 되는 소리가 더 이상 해줄 것 없으니 가라는 말이라면 허무하다 못해 억울하고 원통하기까지 하다. 아마도 처음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보다 더 이상 할 것 없으니 집에 가라는 말을 들을 때에 더 큰 충격을 받는 듯싶다. 의사가 이 말을 하는 의도와 환자가 이 말을 받아들이는 의미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환자는 “이제 더 이상 해드릴 것이 없으니 집 근처 병원으로 가세요.” 라는 말을
1)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다.
2) 아무 치료도 안 할 것이다.
3) 죽을 준비를 하라
의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자꾸 기력이 떨어지고 있던 터라 어느 정도는 짐작을 하고 있었던 상태였지만, 자신의 상태가 이렇게 까지 안 좋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 받고 나면 어떤 환자던지 심리적인 공황상태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여태까지 의사들이 하라는 대로 다 치료 받았는데 의사들이 갑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 같아 의사에 대한 분노의 감정 마저 일으키게 된다.
반면 의사는 “이제 더 이상 해드릴 것이 없으니 집 근처 병원으로 가세요.”라는 말을
1)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등 암에 대해 적극적인 치료가 더 이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2) 그렇다고 해서 진통제 수액 주사 등 기본적인 치료 마저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3) 우리 병원에서는 병상이 모자라서 임종 때까지 입원 치료 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라는 의미로 하게 된다.
의사와 환자간에 같은 말을 두고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는 의사의 말은 암에 대해 해줄 것이 없다는 것이지 진통제나 산소, 수액 등 기본적인 치료 조차 해줄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이점을 이해하고 의사들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사가 집 근처 병원으로 가라고 말하는 것은 대학병원의 특수성 때문이지 환자를 일부러 쫓아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암환자들은 서울의 큰 병원으로 몰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큰 병원들은 병상수가 모자란다. 계속 치료 받던 병원이니 그 병원에 계속 입원하여 임종할 때까지 입원치료 받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항암치료를 중단한 말기 암환자가 병실에 계속 있게 되면 다른 암환자들이 입원을 못하게 된다. 병실은 한정되어있고, 환자는 많기 때문이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모두다 소중한 내 환자들인데, 말기 환자로 인해 적극적으로 항암치료를 받아야 할 다른 환자들이 치료를 못 받게 된다면 무척 답답하게 된다. 매정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다른 암환자들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게 된다.
여태까지 그 병원에서 계속 항암치료 받았으니 임종관리와 호스피스까지 그 병원에서 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입원실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생판 모르는 집근처 병원으로 가라고 하면 환자와 보호자들의 입장에서는 불안한 것은 둘째 치고 배신감 마저 느끼게 된다. 이점에 대해서는 의료제도와 병원시설의 문제이니 환자분들과 보호자 분들에게 조금만 양해를 구하고 싶다.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 현상이 심하지 않거나 호스피스 지역 요양병원이 잘 갖추어져 있으면 이런 문제가 안 생기는데, 현재 우리나라 현실상 여건이 좋지 않다. 그 피해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