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속의 아이와 암덩어리 (1)
배속의 아이와 암덩어리
간혹 신은 인간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절대자인 신은 당신이 만든 피조물들을 가혹하게 만들면서 쾌감을 느끼는지, 한 인간의 운명을 그리도 기구하게 만들어 놓고 나서야 장난을 멈추곤 한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말이다.
그녀의 경우가 그랬다.
임신을 하면 호르몬 변화가 와서 유방이 크고 단단해 진다. 유방이 뭉치기도 하는데 젖몸살이라 하여 잘 마사지 해주면 풀리기도 한다. 그녀도 그랬다. 유방이 단단해지고 아프길래 임신을 하면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만 그런 그녀를 안스럽게 여기고 어쩔 바를 몰라 했다. 친정어머니는 딸의 가슴을 정성스럽게 마사지 해주었다. 애기가 안 들어선다고 시댁에서 눈치 보며 지내다가 어렵게 임신을 한 34살의 딸. 자기보다 일곱 여덟살은 어린 산모들과 함께 산부인과를 다닐 때에도 친정어머니는 꼭 딸과 함께 병원에 가곤 하였다. 내 새끼가 새끼 낳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냐며 어머니는 무척 정성을 다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정성으로 그녀는 결국 젖꼭지에서 피가 나오고 나서야 병원을 찾았다.
“유방암입니다. 임파절에까지 많이 번진 것 같아요. 서울의 큰 병원에 가보세요.”
서른 넷의 나이. 임신 5개월. 그리고 유방암.
그녀와 그녀의 남편,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뱃속의 아이까지 네 식구는 당장 서울의 큰 병원으로 달음질 쳐왔다. 다시 조직검사를 해봐도 분명 유방암은 맞았다. 암세포들은 이미 피부 바로 아래까지 쳐들어와서 유방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초음파 검사에서는 목에 있는 임파절에까지 전이가 있었다. 임신 때문에 CT검사, 뼈스캔검사를 할 수도 없어 정확히 병이 어디까지 번졌는지 확실히 알 수도 없었다.
확실한 것은 유방암이라는 것. 뱃속에는 아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무언가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삶은 가혹하게도 우리에게 어려운 선택을 강요한다. 그 선택 속에서 좌절하고 원망해봐야 남는 것은 없다. 오직 선택만이 우리 앞에 자리잡고 있다. 어서 선택해봐라 내 그 결과를 보여주지 하며 신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앞에 있었다.
아이를 희생하여 엄마를 살릴지 엄마를 희생하여 아이를 살릴지 우리는 정해야만 했다. 전생에 이 모자는 무슨 기구한 인연이었길래 한 명이 목숨을 내 놓아야 다른 한 명이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가. 기구하다는 말로는 밖에 표현하지 못함은 표현력이 짧아서가 아니라 이들 모자 앞에 놓여진 운명의 신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기구하다며 운명의 신을 탓하면 왠지 신을 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결국 나를 포함한 의료진은 고심 끝에 항암치료를 권유 하였다. 염증성 유방암에 목에 있는 임파절에까지 번져서 수술은 도움이 안될 것으로 판단했다. 항암치료는 최대한 태아에게 피해가 안 가게끔 약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더라도 태아에게 피해가 100% 안 가지는 않을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무리 약한 항암치료라고 하더라도 항암제가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알 수 없다가 맞는 말이다. 학계에 보고된 몇몇 사례들을 보면 임신 중에 항암치료를 해도 태아에 큰 문제가 없었다더라 하고 그녀에게 말을 하였다. 거짓말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정직한 말도 아니었다. 항암제라는 것 자체가 원래 빨리 분열하는 세포를 공격하도록 만들어 진 것 아니던가.
그녀의 몸에는 빨리 자라나는 생명이 두 개가 있었다. 유방암도 빨리 자랐고, 뱃속의 아이도 빨리 자랐다. 항암제가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의사들이 아무리 괜찮다 말을 해도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녀는 뱃속 아이의 엄마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