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 줍는 노인

 

 

매일 같은 시간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다 보니, 지하철 안에서 제법 안면이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매일 나와 같이 지하철을 타서 신문지를 줍는 자그마한 체구의 할아버지이다. 그 할아버지는 구멍이 송송 난 초록색 등산용 조끼에 모자를 쓰시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칠부 반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시다. 일흔을 조금 넘긴 듯 보이는 그 할아버지를 지하철 안에서 나는 매일 만난다.

 

그 할아버지는 키가 작아 손이 선반 위에 잘 닿지 않기에 다른 할아버지에 비해 힘들게 일하는 편이다. 행여나 젊은 사람들이 무신경하게 선반 깊숙히 신문을 던져 놓았다면 할아버지는 한 손으로는 철기둥을 잡고 두발은 까치발을 한 채 나머지 한 손을 선반위로 쑥 집어넣어 닿을 듯 말듯한 무가지를 잡아 내려 바둥거려야 한다. 그렇게 힘겹게 신문을 잡아 냈다가 손이 내려오면서 행여라도 옆에 서있는 젊은 아가씨의 팔에 신문이 스치기라도 했다면 예쁘게 차려 입은 아가씨는 인상을 쓰며 한 손으로 할아버지와 스쳐 지나간 옷가지를 탁 탁 털어내곤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어디 다른 신문지 없나 두리번 거리며 또 다시 신문지를 찾아 나선다.

 

원래부터 그런 일 따위에는 자존심이 상해하지 않았던 사람인지 아니면 이런 일을 오래 하다 보면서 무감각 해진 것인지 나로서는 알 재간이 없다.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도 감내해야만 하는 삶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런 저런 남의 시선에 신경쓰다가는 아무 것도 못한다는 점을 오랜 세월을 통해 계셔서 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할아버지가 애타게 찾아 다니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 읽고 버린 지하철 무가지. 오전 내내 신문지를 모아서 버는 돈은 삼천원 정도 라고 한다. 그나마도 요즘에 파지 줍는 노인들이 많아져서 종이값을 후하게 쳐주지 않는다고 한다. 삼천원이면 젊은 사람들 기분 내킬 때 커피전문점에서 마시는 커피한잔 값만 못하다.

 

할아버지도 살아온 세월 만큼 자존심도 있고, 나이도 있고, 아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지하철에서 무가지를 줍다가 행여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이 들수도 있을 텐데 그런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삼천원을 벌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지하철을 타신다.  

 

자존심, 나이, 그런 것보다 현실의 삼천원이 더 큰 가치를 갖는가 보다. 하긴 자존심이 밥먹여 주는 것도, 나이 많다고 해서 누가 밥먹여 주는 것도 아니기 않던가. 젊었을 때 평생을 바쳤을 직장도, 눈에 넣어 아프지 않았던 자식도 늙어서 돈 없는 것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 없는 일이다.

 

노년기의 삶이 그러하다는 것은 꽤나 슬픈 일이다. 남들은 연금이니, 월세수입이니, 자식들이 보내주는 생활비니 하는데, 할아버지에게는 남의 나라 일이다. 아파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삼천원 벌이도 못할 텐데, 그럼 누가 나를 돌볼 것인가 하는 일이 할아버지에게는 더 현실적인 일일지 모르겠다.

 

 글쎄 굳이 가정하고 싶진 않지만 내가 할아버지의 처지라면 어떨까. 살만큼 살았는데 그냥 딱 눈감고 한강다리 가서 죽어 버리릴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지도 모르겠다. 희망이 없이 하루 하루 단돈 삼천원을 위해 고된 몸을 이끌고 젊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니면서 지하철을 헤집고 다닐 용기가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매일 할아버지를 변함없이 지하철로 오게 만드는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그 무엇은 과연 삼천원과 맞바꾸어질 만한 가치밖에 없는 것일까

 

 88만원 세대라고 불리 우는 요즘 젊은 사람들의 앞날도 우울하기 그지 없지만, 하루에 삼천원을 벌기위해 아침부터 버둥거리며 열심히 지하철에서 파지를 줍는 할아버지를 보면 산다는 것이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따라 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왠지 낯익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일 부터는 지하철 입구에서 무가지를 여러 개 집어 와야 겠다 생각해 본다.

Posted by 김범석 bhums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