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우리 암환자 분들이 하루 하루 투병생활 하면서 힘든 것들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독한 항암제, 신체적인 통증, 식욕부진, 엄청난 치료비, 실직, 가족과의 관계…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암에 걸리지 않은 상황에서도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많은데, 암이라는 병까지 얻고 나서 보면 세상 살이가 정말 쉽지 않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완치를 목표로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전이된 상태로 진단되었거나 재발된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암 치료의 목적이 완치가 아니라 생명연장 혹은 삶의 질 향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암환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여러 가지 고통을 하소연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사실은 다름아닌 암이 완치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몸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겠는데, 나는 이제 끝났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열심히 치료해 봐야 암이 다 낫지 않는다는 사실.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암으로 죽을 것이라는 사실 자체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암을 떨쳐 버리고 예전과 같이 건강했던 시절로 돌아갈 가능성이 10%라도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열심히 치료를 받아 보겠는데, 그럴 가능성이 없이 남은 생애를 암환자라는 표딱지를 붙인 채 독한 항암치료나 하다가 그렇게 살다가 죽게 된다는 사실이 가장 힘이 든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에 대응하는 방식도 제 각각이다. 완치를 시켜준다는 곳에 혹해서 찾아가는 환자들도 있고, 조용히 신앙생활에 매진하는 환자들도 있다. 가족들을 들들 볶아대면서 가족들을 힘들게 만드는 환자들도 있고, 외부와 단절한 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환자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 채 하루 하루 의미없이 낭비하다가 어느 순간 죽음에 대한 준비도 못한 채 돌연히 죽음을 맞이하곤 한다.
암에 걸렸으니 희망이 없다고 여기는 데에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예전에 어느 올림픽 결승 경기를 보다가 한국 선수가 외국 선수를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하던 장면을 본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외국 선수는 울거나 속상해 하는 표정 없이 경기에 지고도 너무나 좋아했다. 은메달을 따서 너무나 기쁘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선수 같았으면 금메달을 못 따서 분하고 억울해 했을 텐데, 또 국민들도 금메달을 못 딴 역적 죄인취급을 했을 텐데, 그 외국 선수는 달랐다. 올림픽에 참가해서 경기를 치른 자체가 너무나 좋았는데, 은메달까지 따게 되니 너무나 기쁘다는 것이었다.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의 방식으로는 금메달 숫자가 몇 개냐 우리가 1등 한 종목이 몇 개 냐로 전세계 국가의 순위를 매기지만, 외국의 경우 금은동메달을 합쳐서 순위를 매기는 나라도 있다.
암도 마찬가지이다. 암으로 사망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그저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치료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 하자. 내가 오늘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해 보자. 그리고 쉽진 않겠지만 현재를 즐겨보자.
간혹 환자분들 중에서는 나는 암에 걸려있고, 나는 이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동정심을 받아야 하며, 나는 행복해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느끼는 경우가 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내가 암환자여도 지금 이순간 나는 충분히 행복해도 되는 사람이다.
살날이 얼마 안 남았어도 지금 이순간 나는 충분히 행복해도 되는 사람이다.
병에 걸려 돈이 없어도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지금 이순간 나는 충분히 행복해도 되는 사람이다. 암환자이기 때문에 나는 행복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버리자.
그래야 삶의 희망이 보이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너무나 소중한 지금이라는 이 순간에 감사할 수 있게 된다. 암에 걸리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왜 나만 이렇게 되었나 원망의 마음을 갖지 말자. 언제 죽을지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우리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다. 100년이 지난 뒤에까지 지구상에 살아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희망을 가지고 지금 이순간에 행복하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현실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 일이다.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재가 소중한 시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남았냐는 양(量)적인 개념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냐는 질(質)적인 개념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옛날에 어느 환자분이 하도 우울해 하기에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그 환자분이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그 사실을 암에 걸리기 전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었을 것 같네요. 우리 애들 한테도 이야기 해주어야 겠어요.”
우리 인간은 그렇게 소중한 것이 없어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존재인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