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마지막 강의

칼럼 : 2008/11/04 15:59

마지막 강의

 

맑은 눈을 가진 선한 인상의 한 중년 남자가 강단에 섰다. 자신은 췌장암에 걸렸고, 간으로도 열 군데 이상 전이가 되어있다며 CT 사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이 기대한 만큼 우울하거나 슬퍼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을 실망시켜서 미안하다며 농담을 했다. 그것을 보면서 머리 속에서 ! 저 사람이 아직 denial의 단계를 못 벗어났구나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마치 내 생각을 눈치챘다는 듯이 그가 말했다.

“I’m not in denial.”


 그러더니 자기는 여기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건강하다며 갑자기 팔굽혀 펴기를 했다. 그리고 강의를 했고, 나는 강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강의는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퍼졌고, 강의 내용은 책으로도 나오게 되었다.



 마지막 강의라는 제목의 이 책은 췌장암을 앓고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랜디 포쉬 교수가 대학 강단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강의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책의 내용은 죽음을 앞둔 교수가 들려주는 인생의 교훈으로 요약될 수 있지만, 책 전반에는 그보다 심오한 무언가가 깔려있었다. 그 저변에 있는 것은 인생의 모순과 역설이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참 아이러니 하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말기 암 환자가 살 날이 구만리 같은 사람들 앞에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예찬을 하고 어린 시절의 소중한 꿈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었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사람은 살면서 알아야 할 것들을 알고 있었고, 살날이 많이 남은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달았지만, 더 이상의 인생은 주어지지 않았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쓴 글이지만 글이 전혀 어둡지 않음은 그가 그만큼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삶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꿈을 사랑하는, 하지만 그러기에 그 모든 것과 이별을 해야 하는 인간의 근원적 숙명 앞에서 그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웃으면서 말해주고 있었다. 그 숙명 앞에 죽음 앞에 한 인간은 한없이 무기력하지만, 돌이켜 보면 결코 무기력한 것만은 아님을 그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책에서는 평범하지만 우리가 잊기 쉬운 교훈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주세요. 감사할수록 삶은 위대해집니다.

- 준비하세요.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온답니다.

- 가장 좋은 금은 쓰레기통의 밑바닥에 있습니다. 그러니 찾아내세요.

- 당신이 뭔가를 망쳤다면 사과하세요. 사과는 끝이 아니라 다시 할 수 있는 시작입니다.

- 완전히 악한 사람은 없어요. 모두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세요.

- 가장 어려운 일은 듣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전해주는 말을 소중히 여기세요. 거기에 해답이 있답니다.

- 그리고 매일같이 내일을 두려워하며 살지 마세요.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세요

 

랜디 포쉬 교수는 아빠 없이 자라나야 할 여섯 살, 세 살, 16개월 되는 세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고,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남겨두기 위해 강의를 하게 되었고, 그 강의 내용을 엮어서 책을 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남겨지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까. 책에는 교훈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보통상황이라면 나이 드신 어른들이 하는 잔소리 정도로 들릴 수 있는 이런 평범한 교훈들이, 마음 깊이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살아가려 했던 그의 모습에서 그렇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당신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좋은 교훈을 남겨주고 가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김범석 bhums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