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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장려상> 나는 당신의 진료를 거부합니다
김범석 (국립보건연구원 공보의)
등록 : 2009-03-05 11:40
제8회 한미수필문학상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수희 씨는 예쁜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참 고왔던 환자였다. 6년 전 그녀는 임파종 진단을 받기도 했지만, 항암치료를 받는 등 열심히 투병생활을 한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암을 극복하고 나서는 원하던 공부를 마쳤고 얼마 전에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서 알콩달콩 재미난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던 그녀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은 ‘목의 통증’이었다. 수희 씨는 병원에 오기 두 달여 전부터 목이 아팠었는데, 어느 날 입을 벌리고 거울을 통해 목 안을 들여다보니 편도 뒷부분으로 툭 튀어나온 덩어리가 보였다. 이런 경우 누구나 짐작하듯 가장 걱정되는 것은 암의 재발이다. ‘병원에 갔다가 암이 재발된 것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끌 수는 없는 노릇인데….’ ‘하필이면 결혼해서 이제 잘 살아보려는데….’ 그녀와 가족들은 겁이 나서 한참을 망설인 끝에야 다시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목을 들여다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암이 재발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편도 뒷부분에 생긴 덩어리가 꽤 컸고, 경계도 불분명한 것이 양성은 아닌 듯 보였다. 이런 경우 예전에 치료받은 임파종이 재발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임파종과는 다른 새로운 암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우선 조직검사를 해서 암세포가 있는지를 알아봐야 했다.

 수희 씨 인생에서 참 길었을 며칠이 지났고 검사결과가 나왔다. 예상대로 암세포가 발견됐으며, 조직검사 결과지에는 ‘임파종’이라고 적혀 있었다. 예전과 같은 유형의 임파종인지 아니면 새로운 유형의 임파종인지는 몇 가지 특수면역검사를 거쳐야 알 수 있다고도 쓰여 있었다. 어찌됐든 ‘암’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당시 나의 변함없는 지론은 환자 본인에게 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더욱이 수희 씨는 똑똑하고 젊은 환자였다. 나는 검사결과로 나온 내용 전부를 수희 씨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수희 씨, 오늘 결과가 일부 나왔어요.”
“암인가요?”
“네.”

 이 짧은 대화 뒤에 우리 사이에는 오랜 침묵이 흘렸다. 참 짤막한 대화였지만, 그 대화 속에서는 모든 것이 오고 갔다. 나는 말을 이었다.

“암 덩어리가 편도 뒤에 있고, CT 결과로는 목쪽 임파절까지 있는 것 같아요. 병리과 교수님 말씀으로는 임파종이 맞기는 맞는데, 어떤 종류의 임파종인지, 지난번 임파종과 같은 유형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특수염색검사가 필요하다고 하시네요. 최종적으로는 특수염색검사 결과가 나와야 확진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암이 맞기는 맞네요. 그 사이에 뇌 척수액 검사를 해 볼게요. 이 병이 뇌 척수액으로도 잘 가기 때문에 그래요.”

 검사결과를 설명한 뒤, 병실 문 밖을 나서자 그녀의 어머니는 나를 쫓아 나와서 정말로 확실한 거냐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이런 때가 의사로서 가장 괴로운 순간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복도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어머니에 의하면 수희 씨는 너무나 착하고 예쁜 딸이었다고 한다. 키우면서 단 한 번도, 정말 한 번도 엄마, 아빠 속을 끓여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사려 깊고 마음 씀씀이도 고와서 어릴 때부터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고, 학교 다닐 때는 공부도 무척 잘했다고 했다. 며칠 수희 씨를 대해본 내가 보기에도 정말 그랬을 것 같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착하고 예쁜 딸이 바로 수희 씨였다.

 그날 밤이었다.  

“주치의 나오라고 해!”

  병동에서 밀린 차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병동이 시끄러워졌다. 스테이션으로 나가보니 TV에서 보던 낯익은 탤런트가 내 이름을 부르며 난리를 치고 있었다. 병실에서 한 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간호사들을 통해 수희 씨 아버지가 중견탤런트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지금 스테이션에 있는 그가 바로 수희 씨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니가 주치의냐? 니가 우리 수희 주치의냐고! 니가 의사야? 니가 의사냐고!!! 너 같은 XX가 의사냐! 너는 의사할 자격이 없는 XX야!”

 온갖 험악한 육두문자가 날라 오고, 벌건 얼굴에 술냄새를 풍기며 그가 행패를 부렸다. 그는 나를 밀치고 내 멱살을 잡으려 했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경비아저씨들이 출동해서 제지하고 나서야 사태는 일단락됐다. 그는 경비아저씨들에게 질질 끌려 나가면서 마지막으로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는 당신의 진료를 거부합니다. 우리 딸 내일 퇴원시킬 테니 그렇게 아시오!”

 사실 의사들은 이런 일을 종종 겪는다.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보호자들에게 맞는 일도 생긴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잘잘못을 떠나 기운이 빠지고 기분이 참 씁쓸해진다. 어떤 때에는 참 더럽고 치사해서 의사짓거리 못 해먹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나름대로 곱게 자란 사람인데, 내가 뭐가 아쉬워서 이렇게 보호자들에게 맞으면서까지 의사짓을 해먹어야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 날의 경우에는 도대체 보호자가 무엇 때문에 저렇게 화가 났는지 곰곰히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었다. 홀로 병동에 앉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았고, 잘못이 없는데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기운이 빠지면서 무척 힘들었다.

 다음날 아침. 수희 씨에게 회진 가니 수희 씨와 어머니가 안절부절 못하며 나를 맞이했다.

“선생님, 어제 우리 애 아빠 때문에 너무 죄송해요. 뭐라 드릴 말이 없어요. 어제 우리 집 양반이 ‘암 덩어리’라는 말에 하도 속상해서 그랬다고 하더군요.”


그제야 어느 정도 상황파악이 됐다. 문제의 발단은 문제의 발단은 내가 수희 씨에게 설명을 할 때 ‘암 덩어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이었다. 전날 내가 결과를 설명해 주기 위해 병실에 노크를 하자, 그 중견탤런트는 혹시라도 의사가 와서 안 좋은 소리할까봐 가슴이 떨려 화장실로 숨었고, 그렇게 내가 수희 씨에게 직접 설명하는 것도 듣게 된 것이었다. 그 중에 수희 씨 상태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용했었던 ‘암 덩어리’라는 단어가 대못이 되어 중견탤런트의 가슴에 박혔나보다. 

 “우리 집 양반이 어제 울었어요. 병이 재발한 것도 속상한데 어제 선생님이 암 덩어리라고 해서 그게 그렇게 마음 아팠나봐요. 암세포도 아니고 암 덩어리라니… 어떻게 의사라는 사람의 입에서 그렇게 험악한 단어가 나올 수 있냐며, 도대체 그게 의사가 할 말이냐며… 우리 집 양반이 어제 그것 때문에 속상해서 울었어요. 생전 우는 법이 없던 양반인데 어제는 울더라고요.”

 나이 예순의 그 중견탤런트는 평소 씩씩하고 늠름한 배역을 주로 맡았는데, 수희 씨가 입원해 있을 당시에도 전쟁을 지휘하는 용감한 장군역으로 TV 사극에 출연 중이었다. 하지만 현실 속의 그는 극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무척이나 마음이 여렸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또 딸에 대한 사랑이 아주 지극해서 수희 씨가 암으로 진단 받자 아예 병원 근처에 방을 구하기도 했고, 녹화가 없는 날에는 병원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병실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의사의 입에서 혹시라도 나쁜 이야기가 나올까 무서워서, 그는 의사만 보이면 숨었던 것이다. 복도에 있다가 멀리서 담당 의사가 오는 것 같으면 계단 쪽으로 숨었고, 병실 안에 있을 때는 누군가가 병실 문을 노크하고 회진 오는 것 같으면 재빨리 화장실에 들어가 몰래 숨었다.

 그날도 화장실 안으로 숨었다가 암이 재발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이어서 ‘암 덩어리’라는 말도 듣게 되었다. 한마디의 말에 상처 받은 그는 너무나 가슴이 미어져 화장실에서 혼자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슴에 못내 사무쳤는지, 밤늦게 술을 마시고 와서 그날 병동에서 난리를 피운 것이었다.

 내 입에서 나온 ‘암 덩어리’라는 단어가 결국 사건의 화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후에는 설사 그가 병실에 없더라도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기울여가며 조심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화장실에 숨어서 듣고 있을지 모르는데, 또다시 그의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하게 될까봐 한마디 한마디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저기 멀리서라도 내가 보이면 슬금슬금 피했고, 끝내는 나와 마주치지 않았다. 나도 억지로 그와 마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수희 씨를 통해서 충분히 알았기 때문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쪽같은 딸내미가 아파서 힘겨워할 때 홀로 서럽게 가슴을 찢으며 울었을 아빠의 마음, ‘암 덩어리’라는 단어에 상처 받아 혼자 숨어서 울부짖었을 아빠의 마음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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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범석 bhums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