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당당함
얼마 전 어느 병원의 유방암 환우회로부터 항암치료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의과대학 동기가 근무하고 있던 병원이었는데, 친한 친구의 부탁인지라 선뜻 강의 승낙을 하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고민에 고민이 시작되었다. 무슨 내용을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 것인지, 어느 정도 전문적인 내용을 섞어서 강의를 해야 하는지 막연해서였다. 심지어 환우회에 오는 환자들은 무엇에 관심이 가장 많고, 무엇을 얻고 싶어서 강의를 들으러 오는 것인지조차 나는 잘 몰랐다.
모든 암환자들은 처음 암을 진단 받고 나서 깊은 충격에 빠진다. 암이라면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병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암에 걸리다니. 게다가 영화 속 비운의 주인공들이 암에 걸리면 꼭 얼마 못살고 죽지 않던가. 얼마 못살고 죽게 되다니 서러운 마음에 울고 또 울고… 내가 무얼 잘못해서 그랬나 생각해보고… 그러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범했을 만한 과거 속의 티끌만한 과오라도 찾아내면 그것 때문에 병에 걸렸나 죄책감에 또 울고… 남겨질 아이들 생각하면서 또 울고…
환자분들이 첫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데, 스스로의 의지와 가족의 도움도 중요하지만, 동료 암환자들의 역할도 상당히 크다. 그런 면에서 환우회는 서로를 위안할 수 있는 자조모임이자, 동료 암환자들로부터 생생한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모임이기도 하다. 이러한 환자분들 모임에서 내가 무엇을 이야기 하면 좋을까. 고민 끝에 생각했다.
‘그래. 항암치료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암환자라고 해서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자는 메시지를 이야기 해보자.’
그런 당당함과 자신감이야 말로, 힘든 치료를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강의 당일.
항암치료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었다.
“암환자라고 기죽지 말고, 항상 당당하게 사세요. 대중목욕탕에도 가시구요.”
유방암 환자분들은 한쪽 유방을 도려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목욕탕에 가기를 대부분 꺼려한다. 가슴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도 부끄럽고, 그걸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되는 탓이다.
혹시나 싶어서 환자분들에게 물어보았다.
“목욕탕에는 가세요?”
그러자 약속이나 했다는 듯이 모두 환한 얼굴에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목욕탕에 자주가요.”
그랬다. 오히려 당당하지 못했던 것은 나였고, 그 밝음과 당당함에 압도당했다.
암은 그녀들의 가슴을 할퀴고 지나가, 아름다운 여성성을 도려내고 거친 칼자국만 남겨 놓았다. 하지만, 가슴의 상처마저 훈장으로 바꾸어 놓은 것을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그녀들의 마음 가짐이었다. 그녀들이 당당하지 못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편견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자신의 아픔을 당당하게 승화시키는 그녀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