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2/16 사교육이 암환자에게 미치는 영향 (2) by 김범석 bhumsuk
  2. 2009/12/07 [퍼온글] 의사가 청진을 하면서 꼭 들어야할 소리 by 김범석 bhumsuk

사교육이 암환자에게 미치는 영향

 

 

최근 외고 입시 개혁의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외고 입시 문제가 중학생 수준에서 너무 어렵다 보니, 외고 입시를 준비하기 위한 사교육이 성행하고 있고, 이것이 가계에 큰 부담이 될 뿐 아니라 학교 교육 파행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사교육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의 문제를 떠나서, 이미 심각한 가계 부담의 원인이 되었고, 급기야는 국가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규모조차 알 수 없는 수십 조원의 시장이 이미 형성되어 있고, 지금 이순간에도 애들 학원비를 보태고자 밤에 대리운전을 하는 투잡족 아빠들과 고된 식당일도 마다 않는 엄마들이 있다. 

 

 자식을 조금이라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어하는 학부모들의 마음이 이를 이용한 상술을 만나고 부실한 공교육을 만나면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고,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서 학부모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사교육비가 부담스럽다고 하면서도, 내 아이를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많은 사교육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학교교육만 믿고 있다가는 좋은 대학에 못 갈거라 생각한다.

 

암환자 진료를 하다 보면, 이러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접하게 된다. 남편이나 부모를 암환자로 둔 40,50대의 중년여성분들이 대부분인데, 사교육을 믿하고 공교육을 불신하는 이들은 정규병원진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교육에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듯이, 암치료에도 정규 병원진료만으로는 2% 부족하고, 좋은 치료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건강보조식품, 민간요법과 같은 보완대체의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필자가 느끼기에 이분들의 사고방식은 아래와 같다.

 

l  병원 진료 = 공교육

l  보완대체의학 (건강보조식품, 민간요법) = 사교육

 

비싼 학원에는 뭔가 더 특별한 것이 있듯이 비싼 건강보조식품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하며, 학부모 모임을 만들어 학원 정보를 교환하듯 보호자모임을 만들어 민간요법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이들은 심지어 담임선생님에게 촌지를 주어야 우리 애를 잘 봐주듯이, 주치의에게 돈봉투나 선물을 건네야 우리 환자를 더 잘 봐줄거라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성향은 보호자의 학력과 무관해 보이며, 경제력과도 무관해 보인다. 이들은 어느 학원을 보내는 것이 좋은지 학교 담임선생님과 상의하지 않듯이, 어떤 건강보조식품을 먹는 것이 좋은지 담당 주치의와 상의하지 않는다. 잘못된 건강보조식품으로 간수치가 나빠지고 의사로부터 뭐 다른거 먹은 것 있냐는 추궁을 받아야만 그때서야 실토하곤 한다.

 

사실 교육 시장과 의료 시장은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 보호자(학부모)가 환자(학생)를 의사(교사)에게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점

- 의사(교사)의 역량에 따라서 치료 결과(입시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

- 정부에서는 의료(교육)는 모두 똑같은 의료(교육)이라며 같은 진료비(교육비)를 받는다는 점

- 보호자(학부모)들은 좋은 결과를 위해 추가로 돈을 지불할 의지가 있다는 점

 

그러다 보니 집 근처 병원을 놔두고 좋다는 병원을 찾아 멀리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환자들이 생기고, 좋다는 학교를 찾아 지방에서 강남으로 이사를 오기도 한다. 이러한 보호자들의 마음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근거 없는 맹목적인 사교육이 오히려 피해를 일으킬 수 있듯이, 근거 없는 맹목적인 보완대체 의학 역시 환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곤 한다.

 

최근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에 한국인의 보완대체의학 이용 실태에 대해 보고한 논문1)이 발표되었다. 30세 이상 일반인 3,000명을 조사한 결과, 74.8%가 최근 1년간 보완대체의학을 이용해 본 적이 있다고 대답하였고, 1년에 평균적으로 20만원 정도를 보완대체의학에 쓴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인구 4,500만명 중 30세 이상의 인구가 적어도 2,500만명은 될텐데, 2,500만명이 1년에 20만원씩 쓴다면, 어림잡아 대략 5조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논문에 나온 수치를 성급하게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엄청난 돈이 보완대체의학에 사용되고 있음은 틀림없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점 한가지. 이렇게 많은 돈을 보완대체 의학에 쏟아 붓고 있는데 비해 그만큼 효과들은 보고 있는 것일까? 과연 이 돈은 제대로 검증을 하고 사용되는 것일까? 무조건 비쌀수록 좋은 학원이 아니듯이, 비쌀수록 좋은 것은 아닐 텐데, 한번쯤 그 효능과 안전성에 대해서 고민은 하고 사용하는 것일까?

 

하지만, 사교육의 현실에서 보듯이, 무언가 특별한 플러스 알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병원 치료만 열심히 받아도 충분하다고 말해봐야, 이야기가 잘 먹히지 않는다. 마치 매년 수능 수석이 과외 안 받고 학교 수업만 열심히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여기는 듯싶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검증되지 않은 보완대체요법은 환자에게 악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점이고, 무언가 특별한 플러스 알파를 이야기 하는 상술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reference>

1) Ok SM et al. The Use of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in a General Population in South Korea: Results from a National Survey in 2006. J Korean Med Sci 2009; 24: 1-6

 


Posted by 김범석 bhumsuk
[슬기엄마] 의사가 청진을 하면서 꼭 들어야 할 소리


“폐암 환자를 볼 때 예전에는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호흡음에 변화가 있는지, 심장 잡음은 없는지 주의 깊게 듣는 게 중요했지만 요즘 의사는 그것 외에도 두 가지 소리를 더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지갑의 두께를 짐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폐암에 대한 신약 표적치료제를 자기 부담으로 지불하고 쓸 여유가 되는지 미리 파악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에게 비싼 약을 추천하면 환자가 너무나 속상해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환자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의사가 제안하는 고가의 항암제를 쓰겠다고 선뜻 대답했다가 몇 년 지난 다음에 심사평가원에 고소를 할 만한 사람은 아닌지 미리 예측할 수 있어야 의사 생활 오래 할 수 있습니다.” (국립암센터 이진수 원장, 2009년 11월 26일 국회 항암정책포럼에서)
 
“사정상 그 약을 쓸 형편이 못 됩니다….”

HER2 유전자가 과다발현되는 유방암 환자에서 허셉틴(Herceptin)이라는 약은 유방암 환자의 예후를 가름할 수 있는 결정적이고도 효과적인 약제이기 때문에 HER2 유전자 과다발현 환자에서 이 약을 처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종양학과 의사 사이에서는 중죄(!)에 해당한다. 표적치료제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허셉틴이라는 약은 1998년 미국 FDA에서 승인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부터 재발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게 보험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허셉틴 단독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탁센(Taxane) 계열의 항암제와 병행해서 사용하게 되는데, 고가의 허셉틴에 대해 보험 적용을 해주다보니 탁센은 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허셉틴을 비보험으로 투약할 경우 한 달 환자들의 비용부담이 130~180만원 정도 되는데, 보험이 되면 이중 5%(얼마 전까지는 10%)만을 지불하는 셈이니, 얼마나 저렴한가! 하지만 탁센 계열의 약물 중 가장 싼 약제를 선택할 경우 대략 40~50만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 그러니 이 약제를 포함한 병용요법으로 치료를 받게 되면 한 달에 항암제 가격만 50~60만원 정도가 든다. 허셉틴이 보험이 안 되던 시절에는 140~150만원 정도 들었을 터이니,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허셉틴이 보험적용이 되기 전에도 이미 종양내과 의사들은 대규모 연구결과를 통해 이 약이 생존률 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보험적용이 안 되던 시절에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이 약을 투여할 것을 권유했을 것이다. HER2 유전자 과다발현 유방암의 특징은 나이가 젊은 여성에서 빠른 속도로 재발하고, 재발 후 급격하게 악화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주로 뇌로 전이되어 생존률을 떨어뜨리고 죽기 전 삶의 질이 순식간에 망가지게 된다. 전이성 유방암이 아니라도 완치를 목적으로 한 수술을 받은 환자 중 HER2 유전자가 과다발현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 예방적으로 허셉틴을 썼을 때 이후 재발율을 두 배 이상 낮춘다는 보고가 2005년에 이미 나왔지만, 우리나라는 2009년 7월에 임프절 양성의 조건을 가진 환자로 제한하여 보험으로 사용을 승인할 수 있게 되었다. 특정 약제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시기와 그렇지 않던 시기를 나누어 생존률의 차이가 있음을 보고하는 메타연구들이 있는데, 아마 우리나라는 보험으로 인정해주던 시기와 보험이 적용되지 않던 시기를 나누어 분석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생명 가치의 무한함 vs. 경제적 자원의 유한함

앞으로 항암제는 정상세포를 포함한 모든 세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세포 독성 약제(cytotoxic drug)보다는 특정 신호전달체계 상에서 암세포에서만 발현되는 단백질이나 신호를 감지하여 암세포만 공격할 수 있는 약제가 주로 개발될 것이다. 치료 효과를 드라마틱하게 향상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약제들도 꽤 있다. 정상 세포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에 항암제 독성도 상대적으로 낮아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환자들의 삶의 질도 잘 보존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약은 거의 대부분 보험이 안 되기 때문에 한 달에 수백만원을 개인돈으로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그만큼의 비용부담을 짊어질 수 있는 서민들은 많지 않다.
이십년 이상 암환자 치료에 종사하고 계신 모 선생님은 자신의 경험상 ‘전이성 대장암 치료에서 표준치료에 혈관생성 억제제를 추가하는 것이 독성은 무시할 만한 것에 비해 생존률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치료 효과가 좋다’는 설명을 100명의 환자에게 하면 5명 남짓이 신약을 쓸 수 있다고 하신다. 여러 국제적인 치료 가이드라인에서 이 신약을 더하는 것을 대장암의 표준치료로 제시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보험에서 급여가 제한되고 있으니 뻔히 좋은 약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쓰지 못하는 환자가 훨씬 많아, 효과적이고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된다 해도 이를 환자에게 설명하는 것은 의사에게도 설명을 듣는 환자에게도 고통이 되는 현실이다.
다국적 기업에서 개발한 신약들의 효능이 입증되고 좋은 약제가 많이 나올수록 (또 그만큼 비싼 약들이 개발될수록) 우리는 계속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가? 이제 특정 약제를 보험으로 쓰게 해달라는 주장을 하기에는 ‘좋은’ ‘신약’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암환자의 진료비용 본인부담을 20%에서 10%로, 10%에서 5%로 낮추면 중산층 암환자들이 비급여 신약을 치료제로 결정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인가? 모든 신약을 다 보험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우선순위는 누가,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환자에게 어떤 약을 쓸 것인가는 지극히 의학적 질문이지만, 그 대답을 얻는 과정에는 사회적 합의(consensus)가 필요한 것이다.
 
그동안 할 말 많았다
 
종양내과는 다른 내과의사들에 비해, 예를 들면 내시경, 초음파, 혈관촬영술 등 활발한 술기를 병행하며 진료하는 내과의사들에 비해 육체적 활동성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 주로 책상 앞에 앉아 일하고 환자 차트를 뒤적이며 논문을 준비하고, 어떤 약을 쓸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시간이 일과의 대부분일 것이다. 다른 과와 집담회를 하거나 학회에 가거나 하는 활동들도 거의 책상과 의자 앞에서 이루어지니 특별히 기분을 전환할 아이템이 없다. 그런데 머릿속에 쌓여 있던 고민과 불만, 그리고 분노가 조심스럽게 표출된 곳이 있었으니, 11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제1회 항암정책포럼 : 항암제 보장성 강화의 방향’이라는 이름의 세미나였다. 세상물정 모르고 열심히 환자보고, 열심히 연구활동하는 데 여념이 없으신 줄만 알았던 종양학과 대 선배 의사선생님들이 많이 참석하셨다. 부족한 현실이지만 ‘내 앞에 있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으로 자리에 오셨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세상 일은 최선을 다하려는 순수한 마음만으로 변화되지 않으며 치밀한 계산과 사회적 주장, 그리고 정치적 세력화를 동반했을 때 변화가 가능하다는 면에서 야속하다. 좋은 약이 있으니 더욱 많은 환자들에게 그 혜택을 주고, 내가 치료하는 환자가 잘 나을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을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경로를 거쳐야 할 것이다. 전체 인구대비 해당 질환 환자의 비율, 질병의 중등도를 고려하여 재원의 cost to benefit ratio를 따져봐야 한다. 정책결정권자들과 끊임없이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사회적 발언이 일상화될 수 있는 루트도 준비되는 것이 좋겠다.
특별한 사회적 압력이나 이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우리 의료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는 중요한 자리가 ‘자생적으로’ 마련되었다고 믿고 싶다. 정작 국민은 그 자리에 없었고, 여전히 정책결정권을 가진 쪽에서는 일방적인 주장을 반복하고 의사가 돈 문제를 거론하면 논의와 상관없이 제약회사 리베이트에 대한 책임을 운운하며 논의의 핵심을 비껴가는 후진적인 토론 문화가 극복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 이번 원고의 많은 표현은 ‘항암제 보장성 강화의 방향’ 포럼에서 여러 선생님들이 개진하신 의견을 인용하고 재구성한 부분이 많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쓴이 이수현은, 이화여대에서 자연과학의 기본인 물리학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의 기본인 사회학을 공부했다. 의료사회학 전공으로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으나, 응용과학의 첨단인 의학을 ‘직접’ 공부하고 싶어서 연세의대에 편입하여 4년만에 ‘쾌속’ 졸업하고 의사가 됐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과 내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하고, 지금은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펠로우다. 여전히 남편은 물론 딸 슬기에게도 별로 신경을 못 쓰는, 친정 어머니를 괴롭히지 않고는 생활이 안 되는 30대 아줌마다. 지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배운 사회학과 의학을 접목해 보리라는 의지를 잃지 않고 있다.




Posted by 김범석 bhums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