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살고 싶어요
대한민국의 의사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그라목손이라는 약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진녹색의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이 약은 제초제이고, 사람들이 자살할 때 즐겨 찾는 약 중 하나이다. 몇 십알 먹어도 죽지 않는 어설픈 수면제와 달리 그라목손은 단 한 모금만 마셔도 치사율이 100%에 달한다. 심지어 청바지에 한방울만 튀어도 청바지에 구멍이 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의사라면 그라목손이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여태까지 그라목손을 먹고 살아난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치사율 100%. 하지만 의사들이 그라목손을 싫어하는 다른 이유는 치사율이 높아서가 아니다. 그라목손이 사람을 죽이는 방식이 아주 잔인하기 때문이다.
몇 년전 유채꽃이 만발한 어느 해 4월. 제주도에 파견 근무 나갔을 때 일이었다. 병동 회진을 돌고 있는데, 응급실 인턴 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선생님, DI 환자가 왔는데요, 그라목손을 먹은 것 같습니다.”
서둘러 응급실에 내려가 보니, 다들 위세척을 하느라고 분주했다. 인턴 선생님과 간호사들은 중년 남자에게 콧줄을 꽂고 엄청난 양의 생리 식염수를 들이 붓고 있었고, 남자는 구역질을 견디다 못해 몸을 버둥거리고 있었다. 환자는 제발 나를 가만히 놔달라는 것인지 극렬히 저항했고, 덩치 좋은 남자 간호사가 못 움직이게 환자 몸을 꽉 붙잡고 있었다. 세척된 위액들이 쏟아져 응급실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한 아주머니가 119 구급대원의 부축을 받은 채 서서 그 광경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년 남자는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는 평범한 농부인데, 병원에 오기 전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을 부인이 발견해서 응급실로 모시고 왔다고 했다. 부인의 말로는 방안에는 소주병과 농약병이 뒹굴고 있었고, 아저씨는 입에 거품을 문채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함께 온 119 구급대원은 익숙한 솜씨로 장갑 낀 손에 빈 농약통을 보여주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고 있었다. 농약병에는 그라목손 이라고 쓰여 있었고, 병 아래쪽에는 ‘주의; 한 모금만 마셔도 사망할 수 있습니다. 절대 마시지 마십시오’라는 경고 문구가 해골무늬와 함께 쓰여져 있었다.
한참 위세척을 하던 인턴 선생님은 응급실에 내려온 나를 보자 환자 상태에 대해 보고했다.
“선생님 위세척은 거의 다 했고 더 이상 나오는 것은 없습니다. 냄새를 보니 그라목손이 맞습니다. ”
4월 인턴이면 아직 임상경험이 없는 초짜 중의 초짜여서, 환자에 대해 보고할 때도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일관하기 마련인데, 인턴 선생님 입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그라목손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라목손이라는 것은 굳이 말 안 해도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응급실에 들어서면서부터 풍겨 나오는 그라목손 냄새를 나도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라목손의 냄새는 무척 고약하고 역겨운 냄새인데, 한번만 맡아 보면 누구나 그 냄새를 평생 잊지 못한다.
“보호자분 잠깐 뵐까요?”
응급실에서 의사가 환자를 보았다면 우선 치료부터 할 일인데, 이 경우는 사정이 좀 달랐다. 치료 보다 보호자에게 경고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환자분은 드셔서는 안될 치명적인 농약을 드셨습니다. 그라목손이라고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위세척한 내용물을 보기에도 이미 많은 양을 드신 것 같구요. 치사량 이상을 드신 것 같습니다. 오래 못 버티고 돌아가실겁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어안이 벙벙해 있던 아주머니는 한참이 지나서야 상황이 파악된 듯 나를 붙잡고 울며 불며 통사정 하기 시작했다.
“워매 어쩐다냐~ 선생님 살려주십서. 제발 우리집 양반좀 살려 주십서.”
“아니요. 죄송합니다. 돌아 가실 겁니다. 100% 돌아가십니다.”
의사라는 나는 저승사자들이나 쓸 법 한 말을 내 뱉었다. 죽음의 저주도 아닌데, 의사 입에서 나오는 말이 100% 돌아가실 거라니… 그렇게 살려달라는 아주머니와 돌아가실 거라는 나 사이에 우격다짐이 벌어졌다. 아주머니는 반드시 살려 내라고 우기고 있었고, 나는 반드시 돌아가실 거라고 우기고 있었다. 몇번의 실랑이가 오간 끝에, 아주머니는 결국 바닥에 드러누워 대성 통곡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제서야 환자에게 줄 약을 처방하러 병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죽는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안 그래요? 여보!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아주머니는 환자분을 붙잡고 울부짖었고, 위세척을 마친 후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환자분도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두 부부는 그렇게 서로 부둥켜 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
곧이어 형님이라는 사람이 왔고, 소식을 들은 다른 친척들도 병원에 도착했다. 멀뚱 멀뚱하게 누워있는 환자는 형님을 보자 마자 부둥켜 안고 울기 시작했다. 친척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주치의인 나를 찾아댔고, 나는 살려달라는 친척들에게 또다시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만 했다. 의사로서 못할 짓이었다.
나중에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들은 사연은 이러했다. 환자분은 농사를 짓다가 약간의 빚을 지게 되었다고 한다. 농사라는 것이 워낙 예측이 어려운 일 중에 하나라서 흉년이 들 때도 있고 예상치 않은 자연재해가 닥칠 수도 있다 보니, 우리나라 농부들 치고 약간의 빚이 없는 농부는 없을 정도이다.
문제는 카드였다. 돈이 급하게 필요할 때 서민들이 가장 손쉽게 부담 없이 소액의 돈을 구할 수 있는 것이 대한민국에서는 카드라는 것이다. 하지만 카드라는 것이 처음에는 부담없어 보여도 어쨌거나 사채의 일종인지라, 결국에는 시간이 지나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 환자분 역시 마찬가지로 돈이 모자라서 카드로 돌려 막다가 빚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고 한다. 더 이상 카드로 돌려막기가 어려워지자, 환자분은 다른 채무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가족에게 손을 벌리게 되었다. 환자분은 하나밖에 없는 형님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고 한다. 본디 순한 성품 때문에 평소 가족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던 그였는데 말이다. 여기에서 돈을 빌려 주었더라면 별 문제가 없이 사태는 일단락 되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형님은 카드빚을 막아달라는 동생의 부탁을 외면했다. 아마도 추측컨대 형님은 동생이 술값으로 카드를 막 써댄 것쯤으로 여겼던 것 듯 싶다. 믿었던 형님이 냉담하자 그는 당황했을 것이다. 돈 나올 구멍이 없어지고 돈을 갚아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모든 채무자가 마찬가지이듯 그도 다급했을 것이고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그럴 때 마음을 달래주는 가장 좋은 친구는 술이다. 그렇게 속상한 마음에 술을 먹다가 홧김에 눈에 띈 것이 농약병이었고, 더러운 세상 에잇 먹고 죽자는 마음에 술김에 농약병을 들이켰다. 허무하게도 그게 사연의 전부였다.
동생의 자살이 자신과 관련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서였는지 그 형님은 동생의 치료에 적극적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야 한다며 주치의인 나를 다그쳤다. 도저히 방법이 없는 거냐며 나를 붙잡고 통사정 했다. 그나마 그라목손에 약간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치료로 헤모퍼퓨전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다. 하지만 효과가 너무 미미하고, 가격도 너무 비싸서 수백만원에 이르는 고가의 치료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형님에게 이 치료를 받아보겠냐고 물었더니 형님은 돈에 상관없이 다 해달라고 했다. 효과가 거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주치의의 설명에도 말이다.
결과적으로 모르긴 몰라도 결국 형님이 병원비로 쓴 돈은 동생이 빌려달라고 했던 돈 보다 많았던 것 같다. 자살기도를 하는 경우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진료비 전액을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무슨 인생의 우여곡절이란 말인가…
“미안해… 다 내가 못난 탓이야.”
형님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다가 환자는 한마디 했다.
그라목손이 잔인하다는 이유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라목손을 먹으면 일반적으로는 바로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라목손을 먹고 나서 바로 고통 없이 죽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폐를 파괴하며 숨차게 만들어서 사람을 말려 죽인다.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는 의식도 멀쩡하고 보통의 상태로 돌아오는데,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서서히 그라목손이 숨줄을 죄여오기 시작하고, 그렇게 숨이 차는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게 된다.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위세척등 응급 조치가 끝난 후 그는 다시 멀쩡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멀쩡한 의식과 판단력을 가진 평소의 그의 모습으로 말이다. 다만 환자복을 입고, 몸에 주렁주렁 링거병을 달고, 중환자실에서 멀뚱 멀뚱 누워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라목손을 드신 환자분들은 이 시기에 보통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지금 이렇게 두눈 멀쩡히 뜨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있는데, 의사들은 나보고 자꾸만 죽는다고 한다고…
의사로서도 죽기 전까지 며칠간은 멀쩡한 제정신으로 살아있는 환자와 마주쳐야 한다. 해줄 것도 없는데, 멀쩡히 두 눈뜨고 있는 환자를 봐야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응급실에서 볼 때는 몰랐었는데, 환자복으로 갈아 입히고 말끔히 씻겨 놓고 보니, 그는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골 아저씨였다. 농사꾼 특유의 구릿빛 얼굴과 굵은 손,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순한 눈망울을 가진 보통의 평범한 농사꾼이었다. 이런 순박한 사람이 어쩌다가 그라목손이라는 극약을 입에 댔을까 의아스러웠고, 어쩌다가 카드 빚에 손을 대어 이지경이 되었는지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었다.
가족들은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그라목손 치료로 유명하다는 S병원으로 전원을 요구하였다. 다 소용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겠다는 가족을 말릴 수는 없었다. 나는 소견서를 작성하였고, 다음날 항공편으로 환자를 이송하기로 항공사에 이야기 해두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시기였다. 그날 오후부터 환자는 서서히 나빠지고 있었다. 환자분의 산소 수치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폐가 손상되면서 점점 호흡곤란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소변도 안 나오기 시작했다. 환자분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이미 팔할쯤 넘어섰고 있었다.
전원을 앞둔 전날 밤. 산소 수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인공호흡기를 단다고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지금 임종하는 것이었고, 인공호흡기를 단다면 예정된 죽음을 다만 며칠 뒤로 미룰 수 있을 뿐이었다. 보호자들은 물론 인공호흡기도 달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인공호흡기를 달기 위해 기도삽관을 준비하고 있는데, 숨이 차서 괴로워하며 그가 나의 가운을 툭툭 치며 손짓을 했다. 그러더니 갈라지는 목소리로 숨차하면서 간신히 입 밖으로 말 소리를 내었다.
“서.. 선… 선생님, 나… 나… 살고 싶어요.”
뒤돌아 보니 그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에게 말을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살.. 살려주세요.”
그게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더 이상 호흡이 유지가 안되어서 그는 인공호흡기를 달아야만 했고, 며칠 뒤 그는 예정된 수순대로 숨을 거두었다. 그 때의 무기력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자살하는 사람이 초지일관 변함없이 죽겠다고 마음 먹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다.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에 죽으려고 약을 먹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생각해보면 죽는 것도 부질없는 일 같고 서서히 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겨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라목손을 먹게 되면 거기서부터 말 못할 고통이 시작된다. 그라목손은 그런 사람들의 변덕스런 마음을 비웃기나 하는 듯이, 그때부터 서서히 숨차게 만들며 처절한 고통 속에 사람을 말려 죽인다. 그라목손을 먹고 나서, 이게 아니니 이제는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날 즈음에서부터 그라목손은 사람을 말려죽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의사들은 살려달라는 애원하는 환자들이 서서히 죽어가야만 하는 모습을 손 놓고 지켜봐야만 하게 된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많은 의사들은 많은 연구비를 들여 그라목손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 고용량의 비타민요법, 특수 혈액투석 등등 다양한 치료 방법이 이 순간에도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그 연구 결과들은 일부 효과가 있긴 있으나, 그 효과가 너무나 미미하여 비싼 돈을 들여 그런 치료를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 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서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아예 그라목손을 판매금지 시키기도 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혹자는 본인이 죽으려고 농약을 마신건데, 여기에까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말하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죽음을 택했겠냐고, 죽음을 택한 개인의 의사도 존중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라목손을 마신 환자들의 많은 경우가 충동적인 경우이다. 홧김에 속상해서 술을 먹고 우연히 눈에 띈 농약을 마시고 병원에 실려온다. 그리고 잠깐 멀쩡해 지는 순간 후회를 한다. 당신은 곧 죽을 거라는 의사 앞에서 살고 싶다며 어떻게 해서든 살려 달라고 말한다. 이런 환자들 앞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Posted by 김범석 bhums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