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신드롬
누구나 좋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어한다. 특히 암환자라면 내 병이 중한 만큼 좋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어한다. 당연한 마음이다. 그래서 아는 사람 중에 의사라도 있다면 내 병에는 어느 병원 어느 선생님이 유명한지를 묻게 된다. 소위 명의를 찾아 이 병원 저 병원 철새처럼 돌아다니는 환자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토록 선호하는 명의란 무엇인가? 어떤 기준으로 명의를 찾게 되는가?
일반적으로는 명의라고 할 때 아래의 기준에 의해 평가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1) 임상경험이 풍부한 의사 (즉 연륜이 있는 의사)
2) 학문적인 업적이 뛰어난 의사 (즉 논문을 많이 쓴 의사)
3) 학계에서 권위가 있는 의사 (즉 동료의사들로부터 인정 받는 의사)
4) 인격을 갖춘 의사 (즉 환자를 내 가족같이 대해주고 마음이 따뜻한 의사)
이중 1)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으나 2), 3)은 전문가들만이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이고, 4)는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내기가 어려운 항목이다.
남들이 어느 병에는 아무개 선생님이 좋다더라 할 때 어떤 기준에서 좋은지를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4)번 항목의 측면에서 좋은 것인지, 아니면 4)는 별로라도 1), 2), 3)이 좋다는 것인지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1) 2) 3)이 좋으니 4) 의 측면도 좋을 것이라고 혹은 4) 가 좋으니 1) 2) 3)의 측면도 좋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가는 실망을 하기 쉽다. 1) 2) 3) 4)는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인터넷상에서는 명의를 평가해주는 사이트가 꽤 많다. 명의를 골라주는 웹사이트에 가보면 무슨 병에는 아무개 선생님 하는 식으로 명의를 추천해준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선정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같은 대형 언론사에서도 간혹 베스트 닥터이니 하는 기사를 통해 명의를 소개하곤 한다. 이런 언론사에서는 명의 선정의 기준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당신의 가족이 OO병에 걸린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진료를 맡기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져서 가장 많은 표를 받는 의사를 베스트 닥터로 선정한다. 그러니까 일간지에 보도되는 베스트 닥터는 동료의사들이 선정해주는 명의이다. 의사들이 생각하는 명의와 환자들이 생각하는 명의는 조금 다르다. 그러다 보니 4) 보다는 1), 2), 3)이 평가에 반영된다. 신문 기사를 보고 유명하시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4) 의 측면에서 실망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내가 의사를 선택할 때에도 1), 2), 3), 4) 중 어느 것에 가장 우선순위를 둘지 정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정해야 한다. 아는 의사들에게 그 분야의 명의가 누구냐고 물어보고 추천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느 부분에 가장 우선 순위를 두는지 곰곰히 살펴 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환자들에 따라서는 실력보다는 인간적인 면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환자도 있고, 반대로 인간적인 면 보다는 실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환자도 있다.
‘유명한 병원에 계신 선생님들이 실력이 있겠지. (name value)‘
‘젊은 의사들이 최신 치료에 대해 더 잘 알지 않을까.’
‘이정도 큰 병원에 계신 분들이라면 실력은 다들 비슷비슷할 것 같고, 나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의사가 좋아.’
‘의사인 내 친구가 말하길 아무개 선생님한테서 치료 받아야 한대. 나는 내 의사친구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겠어.’
‘지방에 있는 작은 병원에 계신 선생님이지만, 나를 오랫동안 치료해 주셔서 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우리 선생님께서 잘 아시니까, 나는 우리선생님을 주치의로 삼을꺼야.’
주치의를 고를 때에는 내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이 있어야 한다.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내가 사는 내 인생이다. 남들이 명의라고 해서 남들의 판단 기준에 휩쓸릴 필요는 없다. 자기에게 맞으면 명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