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속이기
놀랍게도 보호자들이 숨기려고 하는 그런 경우에도 보호자 없을 때 환자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환자들은 이미 상당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인터넷이 워낙 좋아서 인터넷을 통하여, 병의 진행 상태와 예후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기도 하다. 옆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거꾸로 환자분 본인과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보자.
내가 몸이 아파 동네 병원을 갔다. 동네병원에서 의사가 X-ray를 보더니 덩어리가 보인다고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병이면 대부분은 암이다. 아들 내미가 우리나라에서 암으로 제일 유명하다는 병원에 종양내과에 예약을 해왔다. 입원이 오래 걸린다는 걸 여기저기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더니만, 며칠 후에 입원을 했다. 담당 의사를 처음 만났는데, 담당의사가 “보호자분 잠깐만요 밖에서 좀 뵐까요?” 하더니 손짓으로 큰아들과 부인을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한참이 지나도 안 들어 오더니만, 잠시 후 들어오는 마누라 눈시울이 붉어져 있고, 큰 아들놈이 마누라 손을 꼭 부여잡고 있다.
“의사가 뭐래?”
“아니… 당신 치료 잘 받으면 잘 될꺼래…”
그러더니 참았던 눈물 방울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바보가 아니라면, ‘아! 내가 큰 병에 걸렸고, 상태가 무척이나 안 좋구나’
하는 것을 다 안다. 언제까지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병실 회진을 갔는데, 때마침 보호자가 자리에 없는 경우 이런 말을 하는 환자들도 있다.
“선생님. 나 많이 안 좋죠? 애들은 제가 모르는 줄 알아요. 하지만 저는 다 알고 있어요. 애들은 제가 알면 낙심할까 봐 저한테는 말도 안 해요. 그런데, 괜찮아요. 다 말해주셔도 돼요. 옆에 환자들이 얘기 해 줬고, 인터넷도 찾아봤어요. 저에게 남은 기간이 한 6개월 정도 된다면서요? 제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애들한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애들한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요… “
환자와 보호자 서로가 서로를 속인다. 보호자는 환자에게 정확히 말하지 말고 돌려서 희망적으로 이야기 해달라고 하고, 환자는 아마 보호자들이 자기가 모르는 줄 알 꺼라고 그런데 자기는 다 안다고 하면서, 각자 나름대로 준비를 한다.
가끔은 병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환자분 스스로가 지레짐작해서 자신의 인생이 모두 끝났다는 식으로 절망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아니요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항암치료만 잘 받으면 완치까지도 되요’ 라고 아무리 이야기 해도 환자들이 의사를 믿지 않는다. 의사는 나에게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해도 ‘저 의사가 나를 안심시켜주느라고 거짓말을 할꺼야.’,’아까 나 없을 때 보호자랑만 수근수근 이야기 하더만…’ 이렇게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면 상당히 힘이 든다.
이렇게 되면 환자는 의사와 보호자 마저 적군인 상태에서 혼자서 정말 외롭게 암과의 싸움을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