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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7 품위 있게 죽고 싶다. by 김범석 bhumsuk
  2. 2008/02/15 무의미한 연명치료 by 김범석 bhumsuk

품위 있게 죽고 싶다

그는 70세의 폐암 환자였다. 진단 받을 때부터 간과 뼈에 커다란 전이가 있었다. 전이가 있는 4기이기 때문에 수술은 불가능했고, 완치를 바라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환자 본인과 가족들은 환자분의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였고, 생명연장과 증상완화의 목적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평생 교직에 있었다는 환자분은 항암치료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의료진에 매우 협조적이었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항암치료는 비교적 잘 견뎠다. 항암치료 시작 후 줄어들기 시작했던 암 덩어리는 항암제에 금새 내성이 생겨서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이후 두번째 항암제로 바꾸었으나 그마저도 잘 듣지 않았다. 응급실을 통해 입원 했던 것은 세번째 항암제를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그는 숨이 차서 응급실로 왔고, 가슴 X-ray에는 양쪽 폐에 떡하니 폐렴 소견이 자리잡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기는 세균성 폐렴과는 완연히 다른 양상이었고, 젬자라는 항암제로 인해 생긴 약인성폐렴이 의심되었다.

환자의 호흡수는 40회가 넘었고, 산소를 최대한으로 공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소 수치는 70%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환자의 의식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지금 당장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숨을 쉬지 못해 몇시간 안에 돌아가실 것이 뻔했다. 가족들을 불러모아 상황을 설명 드렸다.


 상황이 매우 안 좋은데요, 중환자실 갈지 말지를 지금 정해야 할 것 같아요. 환자분은 워낙 폐암이 있었던 데다가 지금 양쪽 폐에 폐렴이 오면서 갑자기 호흡곤란이 생겼어요. 문제는 폐가 기능을 못해 산소교환이 안 되는 점이에요. 사람이 숨을 못 쉬면 바로 죽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인공호흡기를 달지 못하면 오늘을 못 넘기고 돌아가실 것 같아요. 그런데, 인공호흡기를 단다고 해서 이번 고비를 넘길 수 있다고 장담하진 못해요. 또 설령 이번 고비를 넘긴다고 하더라도 이미 암이 진행된 상태여서 얼마나 더 사실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어요. 그간 환자분이 항암치료에 잘 듣지 않았던 편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래요. 여기에서부터는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가족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듣고, 중환자실 갈지 말지를 정했으면 합니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치료를 받았던 보호자들은 망연자실했고,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냐며 따지는 보호자도 있었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며 나에게 되묻는 보호자도 있었다. 환자에 대해 유난히 극진했던 보호자들은 결국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해달라며 중환자실 행을 택했다.

 그 길로 환자분은 인공호흡기를 단 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온갖 항생제와 약병들이 주렁주렁 매달렸음에도 불구하고, 폐렴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인공호흡기를 매달고 2주가 지나자 기관절제술을 받아야 했고, 인공호흡기로 인한 새로운 폐렴도 생겼으며, 콧줄에서는 간간히 위장출혈 소견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의식 없이 누워있는 환자분에게 면회를 와서 조용히 울다 가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급기야 심장 정지가 왔고 1시간이 넘는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환자분은 돌아가셨다. 인공호흡기로 인해 목에는 구멍이 뚫리고, 팔다리에는 정맥주사 자국이 낭자하고, 심폐소생술하며 갈비뼈는 죄다 부러지고 나서야, 비로소 환자분은 임종을 맞이 할 수 있었다. 그것도 가족들이 지켜보지도 못하는 가운데서 


 지금의 시점에서 되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그때 중환자실에 가도록 한 결정이 잘 한 결정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응급실에 왔었을 때 그때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도록 해드렸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머리 속에 계속 맴돌았다. 만일 사후세계라는 것이 있어서 그 환자분의 영혼을 만날 수 있었다면, 아마도 고맙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을 것 같다.

 

중환자실에서 있었던 2주가 넘는 시간들. 누구를 위한 생명 연장이었으며, 그렇게 해서 연장된 시간이 과연 환자분과 가족들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였던가.

그것이 환자분에게 어떤 고통을 초래하는 지와 상관 없이 어떠한 치료라도 다 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는 가족의 시각. 그리고 죽음을 치료의 실패로 바라보는 의료진의 시각. 여기에 할 만큼 해놔야 나중에 소송 걸리지 않는다는 방어진료와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나중에 환자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은 보호자들이라는 ‘진료 편의주의’. 이런 것들이 맞물리며,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해야 할 환자분들이 고통 속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에서는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들을 놓고 비슷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그렇게 환자 본인의 생사를 다루는데, 정작 환자 본인의 의지는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의 생명을 연장해 보겠다는데, 막상 그 사람은 연장되는 본인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는 왜 고민하지 않고 있을까? 의료진이나 보호자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환자 분들에게 생명연장이라는 포장에 쌓여진 고통만 드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Posted by 김범석 bhumsuk

무의미한 연명치료

현대 의학은 눈부실 정도로 발전을 해서 폐가 기능을 안 해도 인공호흡기로 연명이 가능하고 콩팥이 기능을 안 해도 생명유지가 가능하다. 심지어 일부 경우에서는 뇌가 기능을 안 해도 생명 연장이 가능하다.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그런 기능이 모두 없어도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능한 채 살아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으로써 의식은 없는데, 단지 심장이 뛰고 숨이 쉬어진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일까? 암 환자분이 임종 직전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잃고 단지 심장이 뛰고 호흡이 되는 육신으로 남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과거에는 인공영양, 인공호흡기사용, 심폐소생술, 투석 등 생명연장기술은 말기상태에 있는 환자들에게 행해져야 할 중요한 의료기술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존엄하고 인간다운 죽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생명연장기술이 정말 환자 본인을 위한 것이냐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죽음의 과정에 있는 말기 환자에게 이러한 생명유지장치는 오히려 환자의 고통을 연장할 뿐이며 가족들에게도 부담만을 가중시킬 뿐이기 때문에 비인간적라는 윤리적인 문제가 지적되었다.

지나친 검사와 치료가 죽어가는 환자의 죽음을 역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순간을 잠시 연기시킬 뿐이며 오히려 환자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생명연장기술을 이용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아래의 이유에서 문제점을 갖는다.

1) 인간답고 존엄한 임종을 방해

연명치료는 환자 본인에게 의미 있고 소중한 삶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시간만을 연장함으로써 환자분이 편안하고 인간다운 존엄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을 방해한다. 연명치료를 통해 연장되는 삶이 과연 환자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시간인가를 생각해 보면 불필요한 연명치료가 과연 환자를 위하는 길인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2) 의료자원의 낭비

보호자들 입장에서는 조금 생소해 보일 수 있지만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의료자원의 낭비를 초래한다. 의료자원은 무제한 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회생가능성이 없는 말기 암환자가 인공호흡기를 단 채 중환자실에 있다면, 이는 회생 가능한 다른 환자 한 명이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사회적으로도 말기 암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계속된다면 보험 재정에 과도한 부담이 된다. 게다가 생명연장기술은 남겨지는 가족들에게 큰 경제적 짐을 안겨준다.

환자 본인 스스로와 보호자들은 이런 연명치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느 정도 선까지 받을 것인지 한번쯤 미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