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가기 싫은 응급실 이용하기
죽어도 가기 싫은 응급실 이용하기
대학병원의 응급실은 한번 가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왜 사람들이 다시는 응급실에 가기 싫어하는 지 말이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갔는데, 한번 가보면 그곳은 도저히 사람 갈 곳이 아니다. 응급실은 도때기 시장바닥보다 더 한 곳이다. 침대가 없어 신문지를 깔고 드러누운 환자들이 있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신음하는 환자들이 있고, 한구석에는 보호자들이 울고 있고, 한편에서는 술 취한 취객이 소리 지르고 있고…
응급실은 아주 위급상황에 가게 되거나 혹은 외래가 문을 닫은 저녁시간이나 공휴일에 가게 된다. 응급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학병원의 응급실에 가게 되면 흔히 아래의 일들을 겪게 된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접수를 하라고 해서 접수를 했는데, 다들 바쁘고 누구 하나 나를 반겨주는 사람 없다. 누울 자리도 없고, 기약 없이 마냥 앉아서 두어 시간은 기다려야 인턴선생 얼굴을 볼 수 있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억지로 피뽑고, 엑스레이 검사를 해야 한단다. 피 뺄 때는 여기저기 찔러대더니만, 한참을 기다려도 검사결과에 대해 누구 하나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다. 내 담당 선생은 도대체 누구냐고 지나가는 간호사에게 물어 봐도 자기 관할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며 자기 할 일 하기에 정신이 없다.
한참을 더 기다리자 머리가 부시시한 내과 레지던트라는 사람이 와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왜 왔냐고 퉁명스럽게 물어보고 간다. 아까 인턴 선생님한테 했던 이야기를 두세 번쯤 반복해서 또 하는데, 말을 끊고 가타부타 말이 없이 그냥 가버린다. 싫은 소리하긴 싫었지만 몸이 아쉬운지라 입원이라도 시켜달라고 말을 꺼냈다가 방이 없다며 면박만 당했다.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집에 가겠다고 하니, 이번에는 그냥 집에 가다가 사망 할 수도 있고 무슨 일 생기면 병원에서는 책임을 질 수가 없다는 둥 무슨 각서를 쓰고 가란다. 그렇게 중한 상태면 와서 좀 봐주던가 하지, 봐주지도 않으면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건 또 무슨 일이람…
계산을 하고 가려니 10만원이 훌쩍 넘었다.
젠장 응급실 와서 여섯 시간 동안 한 것은 피검사 밖에 없는데 검사 결과 말 한마디 못 듣고 지레 지쳐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는 죽기 전까지 응급실에는 오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 간다.
흔히들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응급실이 이러다 보니 실제로 응급실에 와야 할 진짜 응급상황에서도 오지 않는 일 마저 벌어진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될까? 진료의 흐름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림- 응급실 진료의 흐름>
여러 단계 거치고 여러 사람 판단을 기다리는 것도 좋은데, 단계가 너무 많아지다 보니 시간을 많이 잡아 먹게 되고 환자는 지친다. 그렇다고 응급실에 오는 모든 환자를 담당교수가 처음부터 다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환자에게도 불편하고 담당교수에게도 불편한데 왜 이런 식으로 여러 단계를 거치게 만들어 놓았을까?
한번 입장을 바꾸어 거꾸로 생각해보자. 환자 입장에서는 응급실이 죽어라 가기 싫은 곳인데 의사입장에서는 응급실은 어떨까?
의사입장에서도 응급실은 죽어라 가기 싫은 곳이다. 환자가 있으면 있어서 정신 없고, 환자가 없으면 없어서 불안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불시에 들이닥칠지 모르는 중환자 때문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밤새 당직을 선다고 다음날 쉬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응급실에서는 종종 의료사고가 난다. 999명의 환자를 제대로 진료하더라도 1명의 환자를 잘못 진료하면 의료사고가 난다. 의사도 사람인 이상 실수라는 것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는 이중 삼중으로 체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인턴, 레지던트가 환자를 보면서 나름대로 자신의 의학적 판단을 내리게 되면, 자신의 판단이 옳은지 자기보다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물어보게 된다. 특히 인턴, 레지던트는 배우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진료도 하면서 윗사람들로부터 한 수 가르침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실력 있는 의사가 되어가는 것이다.
동시에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여러 의사들을 개입시킨다. 인턴 선생님 선에서 괜찮다며 환자를 돌려보냈다가 의료사고가 나는 일이 종종 생기면서, 대학병원에서는 인턴선생님 혼자서 환자를 보고 인턴선생님 개인 재량으로 환자를 돌려보내는 일을 되도록 금지하고 있다. 정말 사소한 상황이 아닌 바에는 인턴 선생님이 환자를 보고 상급자인 해당과 레지던트에게 물어보고 확인 받고 귀가조치를 하게 된다.
게다가 다음날 아침 컨퍼런스 때에는 보통 응급실 당직 보고라는 것을 한다. 그러면 당직 전공의가 교수님들 앞에서 응급실 당직보고를 한다. 그러면서 밤새 환자가 얼마나 왔는지, 환자에 대한 진료는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혹 어려운 케이스가 있었다면 향후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토론한다. 교수님들로서는 밤사이에 자기 환자가 응급실에 오진 않았는지 알아보는 자리가 아침 컨퍼런스 자리이다.
“56세 남자가 호흡곤란을 주소로 응급실 내원하였습니다. 07년 2월 폐암 진단 받고 항암치료 받던 환자는 3일전부터 호흡곤란이 심해졌습니다. 내원 당시 시행한 흉부엑스레이에서 우하엽에 폐렴이 새로 생겨서 어제부터 항생제 치료 시작했습니다.”
“야! 너 저기 심장에 물 찬 거 안보여? 얼른 심장초음파보고 pericardiocentesis (심낭천자술) 해줬어야지 무슨 항생제야 항생제는! 저 바보 같이 무식한 놈!”
대부분의 아침 컨퍼런스 자리는 살벌하기 그지 없다. 당직 보고를 하면서 환자에 대한 처치는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평가 받는데, 전공의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무참하게 박살이 난다. 개새끼 소새끼 온갖 원색적인 욕을 먹는 것도 다반사이고, 너는 그 따위로밖에 환자를 못 보냐는 인격 모독까지 받게 된다. 그러면서 배우는 것이긴 하지만 응급실 담당 전공의로서는 이중 삼중으로 힘이 든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아직까지 우리나라 의료 현실상 응급실은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 곳이 아니다. 환자 입장에서 응급실이 위급한 상황을 넘기고 나를 살려주는 그런 고마운 장소라면 얼마나 좋을까. 의사 입장에서도 응급실이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를 내가 살려냈다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장소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기에 우리네 응급실은 아직 여유가 없고 의료 체계는 엉망이다.
응급실이 복잡하고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한다. 그래도 필요한 경우에는 응급실에 가야 한다. 응급실에 가야 하는데 끙끙거리면서 병을 혼자서 키우다가 더 큰 화를 당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응급실에서 진료의 흐름을 이해하고 의료진들이 왜 그러는지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그나마 나쁜 감정을 덜 가지면서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응급실을 이용해 주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우리도 의료시스템이 정비되며 응급실이 고마운 장소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