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대기, 3분 진료
3시간 대기, 3분 진료
의사들의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 중 하나가 ‘3시간대기 3분 진료’라는 것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대형병원에 가면 환자가 너무 많아 3시간을 기다려서 3분 동안 진료하고 온다는 말이다. 의사들이라고 일부러 그렇게 환자들을 골탕먹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텐데 도대체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을까.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온 국민이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커피 없으면 못사는 나라가 있었다. 커피는 이들 생활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생활 필수품이었다. 가난한 사람은 자판기 커피를 마셨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호텔에서 고급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부에서 돈이 없어 커피를 못 먹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며 커피가격을 정해버렸다. 생활 필수품인 커피를 많은 국민들에게 싼 가격에 공급하기 위해서 였다. 정부에서는 많은 사람이 먹게 해야 한다며 커피 가격을 200원으로 책정하였다. 커피는 원가를 감안해볼 때 200원이 적당하니 그 이상으로는 돈을 받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판기 커피도 일급호텔 스카이 라운지의 원두 커피도 모두 200원으로 통일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좋아했다. 예전 같으면 돈 많은 사람들만 이용했을 일급호텔 커피숍을 200원만 내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되어서였다. 어짜피 똑같은 가격인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사람들은 모두 호텔에서 마시고 싶어했다. 그러다 보니 호텔에서는 사람들이 북적 북적 줄을 서야 했고,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실랑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호텔 직원들은 좋은 원두 커피를 고르고 맛있게 끓여내고 예쁜 잔에 담아 정성껏 손님에게 대접하고 싶었는데 손님들이 몰려오니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가 없어졌다.
처음에는 200원만 내도 호텔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좋아하던 국민들도 불만이 쌓여갔다. 호텔에 가면 사람이 너무 많아 커피를 제대로 마실 수가 없다는 것이다. 쾌적한 환경에서 여유 있게 담소를 즐기며 커피한잔 하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커피를 채 다 마시기도 전에 커피숍에서 나가야만 했다.
호텔에서는 200원에 커피를 팔다 보니 팔면 팔수록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 정부에 커피 가격을 올려달라고 건의했지만, 번번히 집단이기주의로 몰려 커피가격을 올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커피 가격이 물가지수에 포함되어있어 커피 가격을 올리면 그 해의 물가인상률이 크게 오르게 되는 지라, 정부로서는 정치적 부담을 안고서 커피 가격을 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호텔에서는 점점 편법을 쓰기 시작하였다. 주차요금을 시간당 3000원으로 올리고, 스카이라운지 엘리베이터 사용료를 새로 만들었다. 200원짜리 커피를 마실 때에는 3000원짜리 비스켓을 함께 먹어야만 하게끔 규정을 만들었다.
이것저것 합치면 돈은 돈대로 쓰는데, 여전히 커피를 여유 있게 마시지 못하고, 스카이라운지에서 커피 마시기 위해 3시간 기다렸다가 3분만에 후다닥 마시고 나와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불만은 계속 쌓여갔고, 호텔 직원들은 호텔 직원 나름대도 불만이 쌓여갔다.
우회적으로 썼지만, 현재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돈은 돈대로 내는데, 의사도 환자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상한 의료제도가 바로 우리나라 의료제도이다.
세상의 모든 제도라는 것은 만들 때 전문가의 손에 의해 잘 만들어져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는 비전문가들에 의해 정치 논리에 의해 좌우되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또 의도가 좋더라도 결과는 나쁘게 나오는 제도가 너무 많다.
얼마 전 아파트 경비원들 한달 임금이 너무 적으니 최저임금제를 실시해서 일정수준 이상의 월급을 받도록 해주자는 법이 통과 되었다. 경비원아저씨들이 박봉에 시달리고 있으니 최저 임금을 보장해 주어서 생활을 보장해 주자는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법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경비원 아저씨들의 대량 해고로 이어졌다. 임금 총액을 늘일 수가 없으니 정해진 예산으로 사람을 써야 했고, 경비원의 숫자를 줄일 수 밖에 없었다. 안 짤린 경비원 아저씨들의 월급은 좀 올랐지만, 해고된 사람들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기에 근무시간과 근무강도가 더 높아졌다. 그 법은 정년퇴임 후 용돈이라도 벌어보겠다고 일자리에 나선 경비원 아저씨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세상의 모든 제도라는 것이 본래 취지와 달리 변질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많다. 그래서 제도를 만들 때에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일반 국민들의 의견을 듣고,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하면서 제도를 계속적으로 수정 보완 해 나가야 한다.
의료제도는 더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는가. 2000년도에 정부는 의약분업이 되면 의료비를 줄일 수 있어 의료보험료도 덜 내도 된다고 말했지만, 전체 의료비는 계속 오르고 있고, 의료보험료도 계속 오르고 있다. 의약분업과 같은 제도적인 문제들은 지금 이순간에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항암치료 이야기를 하면서 왜 의료 제도 이야기를 길게 하냐면 결국 의료 제도라는 것이 전문가인 의사들이 고쳐나가야 하는 숙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국민 모두의 관심이 없으면 고쳐나갈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투병생활 하면서 조금이나마 의료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 아들 딸들은 나처럼 병원 다니면서 불필요한 고생을 안 한다.


